글Ego 책쓰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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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글쓰기

글Ego 책쓰기 프로젝트

by 이정리 2020. 8. 15.

올해 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실제 행복의 조건이 일치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는 이것만 있으면(되면) 행복할 수 있어' 라거나 '이것만 아니었어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등의 생각은 늘 하는데, 그게 정말 맞는 생각인지 팩트체크를 해보기로 한 것.

 

그 중 하나가 글쓰기, 정확히는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생존을 위해 글을 썼고, 그러다 보니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하다는 다상, 다작, 다독을 어렸을 때무터 셀프훈련 했다. 덕분에 전혀 공부하지 않아도 항상 언어영역 1등급인 재수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만을 위해 글을 썼고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별로 없다. 독자를 위한 글은 거의 써본 적이 없는 셈.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라 뭔가 부족함을 느끼곤 했다.

 

사실 이 세상에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이미 한 권 있기는 하다. 상당히 잘 쓴 글이지만 여러 이유로 밝히지는 않는 책. 누군가의 참고자료로 사용된다면 기쁘겠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어쨌든 글은 평생 쓸 거고, 혼자만 하던 내 글쓰기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가장 평이 좋고 체계적이고 역사(?)가 있는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책쓰기 프로젝트 글Ego

 

홈페이지에 들어가 프로젝트를 신청하려 했지만 해당 기수는 이미 마감되어 다음 기수를 사전신청 해두었다. 카카오 플친으로 사전신청을 해두면 공식 모집 하루 전 연락이 와 먼저 신청을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안내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하고 돈을 입금하면 된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18기였고,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낯가림 심한 성격에 낯선 사람과 만나서 억지로 인사하고 대화해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단점은 역시 참가자들 간 교류에서 오는 시너지는 거의 없었다는 것과 아지트를 실제로 보지 못해 아쉽다는 것 정도. 온전히 내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내겐 장점이 좀 더 많았다.

 

내 글의 제목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나름 패러디.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글감을 골랐다. 여행, 여행사진, 여행의 모든 과정과 순간을 마주하며 변화되어간 나 자신.

짧은 에세이로 쓰기에는 초반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최대한 덜어내는 글을 쓰려다 보니 지나치게 생략되어 문장이 건조해진 부분도 있지만 허락된 여건 안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여행을 시작할 때 너무나 어둡고 부정적인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쓴 이유는... 이런 사람도 생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고, 반드시 여행이라는 수단이어야 되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너무나 싫고 삶이 버거운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나 같은 놈이 또 있었네'라는 생각을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며 글을 쓰느라 수면부족 상태도 겪고, 글을 몇 번이나 엎으며 문장 하나 구두점 하나 고민하고, 책에 실을 사진을 골라내는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지만 단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글이 책이 되어 내 손에 전달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쓴 건 짧은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책의 형태로 찍어낸 인생의 방점이라는 걸.

이전까지 살아온 모든 삶과 많은 여행의 의미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함이었음을.

지금의 나는 비로소, 앞으로 어떤 일을 겪어도 당당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자신을 믿으며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앞으로 내가 써 나갈 글은 이런 나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글이 되리라는 걸. 내 삶이 그러할 것이므로.

 

 

책이 출판된지 몇 주가 지난 어제(8월 14일), 글Ego에서 연락이 왔다.

글의 일부를 발췌해 책갈피로 제작하는 책갈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내 글의 문구로 책갈피를 제작해도 되는지 묻는 연락이었다.

해당 문구는

 

'그렇게 여행의 풍경이 소중하듯 오늘이 소중해진다면, 소중한 날들을 살아내는 나 역시 소중한 이가 되어갈 것이다.'

 

이다.

 

과거의 나는 가끔 내게 예기치 못한 선물을 준다.

어이 없는 일을 당하고 퇴사를 결심하고,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한 문장을 선물받았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작은 기적처럼 선물을 전달해준 글Ego에게 정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아주 조금씩... 타인이 꼭 지옥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참... 책을 다시 읽어보다 발견한 내 카메라 변천사.

책에 실린 책은 모두 캐논 100D로 찍었고, 프로필 사진은 캐논 오막삼을 들었고, 출판된 책은 소니 미러리스 A7R3로 찍었다.ㅡㅡ

 

 

* 이 글은 글Ego로부터 받은 대가 없는 내돈내산 내 의견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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