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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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글쓰기

퇴사

by 이정리 2020. 8. 15.

2020년 8월 14일. 퇴사했다.

2018년 3월 8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입사한 지 891일, 만 2년 5개월 6일 만에 퇴사.

 

내 의지로 퇴사를 결정했고, 오늘 퇴사했다.

미리 조금씩 짐 정리를 해 두었기 때문에 챙길 것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짐이 제법 무거울 것 같아 오늘은 버스를 타고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걸을 만해서 오늘도 집까지 걸어왔다. 당분간 성수대교를 걸어서 건널 일은 없겠지.

 

생각해보니, 언제나 기한이 정해진 채 일을 했다.

계약직이었거나, 처음부터 기한을 정하고 들어갔거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삐그덕 하거나 논문을 쓰기 싫어 회피한 적은 있지만 중도 포기한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식할 정도로 꾹 참고 버티는 거 하나는 참 잘했다.

 

생애 처음 내 의지로 떠난 '그곳'도 반 년 전부터 떠날 결심을 하고 준비를 한 뒤 떠난 것, 한 마디로 계획된 떠남이었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이유로 짧은 시간에 결정해 결론을 내 버린 것이 처음이라, 내가 결정하고 실행한 것임에도 지금이 낯설다. 와본 적 없는 길이라.

 

기분이 어떤지조차 모르겠다.

담담하지만 사실 후회하고 있는 걸까. 두려운 걸까. 불안한 건 아닐까.

홀가분하지도 않다. 정말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방과 책상이 참 너저분하구나... 보기 싫다, 는 생각.

야근과 초과근무, 피곤... 많은 핑계로 방치해왔던 내 공간을 정리해야겠구나.

 

몇 번 짐을 옮기며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고 찾지 못했던 카메라 USB 케이블을 발견했을 때 약간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방에 있었는데 지난 며칠 왜 눈에 보이지 않았을까. 의아하면서도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은 느낌. 흩어진 어떤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안도감. 그런 작은 것에 울컥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나는 지금 심리적으로 약해져 있구나.

 

퇴사하게 된 이유와 나의 생각, 반응, 마음 깊은 곳을 낱낱이 해체하고 분석해야 할 것 같다. 그 모든 과정을 글로 잘 정리해 놓아야 할 것 같다.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런 압박감을 느끼는데... 하기 싫다. 오늘은 잠시 덮어두고 싶다. 그런 날도 있는 것 아닐까.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해야겠다.

방을 쓸고 닦고,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물건을 제 자리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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