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행자가 되기로 결심한지 약 열흘이 지났다.
여전히 새벽예배, 말씀 읽기, 5000보 걷기,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 부자 되기 위한 책 읽기, 하루 두 끼 이상 제대로 먹기, 적당히 쉬어주기 등을 잘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아주 큰 갈등을 겪고 있으며,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 오늘 새벽예배를 가지 못했다. 이유는 한밤 중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고, 잠을 설친 이유는 윗층의 쿵쾅거리는 소음 때문이었다. 짜증이 나서 우산으로 천장을 미친 듯이 두드리자 윗집에선 놀리듯이 쿵쿵거렸고, 그 순간 현타가 왔다.
얼마나 못 배워먹고 무식하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까 싶으며 이런 인간을 상대한다는 게 무의미해져 버렸다. 화도 가라앉아 버렸다.
문득 이 집, 이 건물, 동네가 지겨워졌다.
20대 초중반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애들이 우울한 표정으로 대낮에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도 지겹다.
후줄근하고 그럴 듯한 도서관 하나 없는, 책을 읽지 않는 이 동네도 지겹다.
없이 살고 찌들어서 여유가 없고 우악스러운 일부 동네 사람들도 지겹다.
이런 지겨움이 느껴지자 또 죄책감이 든다.
지금 내 수준이 이런 동네에 살 정도인 것 뿐이다. 결국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기에.
그리고 이 동네가 고향이기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모든 짜증과 지겨움을 자기 계발의 동력 삼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청소년상담사 2급 필기 준비는 끝없는 멘탈 싸움이 되는 중이다.
상담사로서의 내가 번아웃이 온 이유 중 하나는 '전문성 부재'와 '전략 부재' 때문이었다. 그걸 뛰어 넘기 위해, 박사 과정 입시 가산점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이다.
공부 내용보다 나를 더 괴롭히는 건 '내가 정말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상담사였는데 이것도 모른다니.
우습게 여기던 MBTI 문제를 틀렸을 때 멘탈이 휘청거렸다.
와, 나 정말 바닥이었구나.
대부호가 되기 위한 독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교보문고 경제부분 베스트에 오른 신진상의 「미래의 부를 위한 투자 공부」를 빌렸다.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메타버스, NFT, 블록체인 등 내가 거의 모르는 단어들이 나와 책을 덮고 싶었다.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이 '나 이런 거 몰라, 너무 어려워'였고 거부감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해체해야 할 자의식이다. 이런 게 너무 많다.
나름대로 개방적인 마음으로 잘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부정적이고 배타적이고 편견에 가득찬 게 내 진짜 모습이었다.
꼰대처럼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이정도는 당연히 알지'라고 생각한 채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돌아보지 않았다.
공부하는 매 순간, 책을 읽는 매 순간, 블로그 키우기와 콘텐츠에 대한 유튜브를 보는 매 순간 견고한 자의식이 가로 막는다.
아 블로그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정말 이 사람 말대로 될까? 이거 사기 아닐까?,
이미 레드오션이라 나는 너무 늦은 것 같아,
나는 역시 경제적 인간이 아니야,
이건 나랑 안 맞아 등등.
과잉 자의식의 방해가 있을 거라고 예상 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아니 이것도 빙산의 일각이겠지.
하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버티는 거다.
감정이 뭐라 요동치든 정해놓은 매일의 루틴을 지키고, 매 순간 내 앞을 가로막는 자의식과 막연한 두려움을 의도적으로 부수어 나가는 거다.
지금은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처음이니까 당연하지. 하지만 책을 몇 권 더 읽고 동영상을 꾸준히 보면 용어가 익숙해지고 이해하게 될거야.
이 사람 말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해봐야 하는 거잖아. 해 보지도 않고 단정하는 건 어리석어.
이제까지 경제적 사고를 해본 적 없으니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그렇다고 내가 정말 머리가 나쁘거나 독해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야. 그저 익숙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것 뿐이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
조급해하지 말자.
지텔프 공부할 때도 비슷한 상태였던 적이 있다.
정체되고,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너무 이해가 안 돼서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 때 내가 한 건 '그래도 무조건 독서실에 가서 책을 펴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좌절감이 들든 말든 해야 할 것을 그냥 했다.
그리고 결과는 79점이라는 고득점.
당장 결과는 보이지 않고 저만치 앞서가는 이들 앞에서 초라해지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할 것. 그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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