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 학부생들도 진절머리 난다는 스페인 내전.
난 전공자도 아니고 이걸로 시험 볼 일도 없지만...
언젠가 다시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될 때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얻기 위해,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글이나 영화 등 문화 예술 매체를 접했을 때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내 나름의 검색+심박사의 특강(?)+그 동안 쌓아 온 알량한 지식으로 한없이 얕지만 넓지도 않은 지식을 정리해보려 한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7일 ~ 1939년 4월 1일까지 스페인 내에서 벌어졌다.
공화파 vs. 국민파로 나뉘어 동족상잔이 벌어지는 가운데 여타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당시 스페인과 참견국은 물론 이후 이걸 공부하는 역사전공자들에게도)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대환장 파티가 벌어진 것.

우리 나라의 6·25전쟁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내전이 발발하기 전 스페인 국내외 상황을 조금 알아두어야 한다.
먼저 국제 상황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제 1차 세계대전, 공산주의 선언, 파시즘, 세계 대공황이다.
벌써 토나올 것 같다.ㅡㅡ
하나씩 봐도 포스트 100개 짜리 주제들이지만 수박 겉핥기 스킬을 활용해 들여다 보자.
공산주의 선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동집필 하고 1848년 2월 21일 출간된 선언문이다.
(둘은 프로이센(독일) 출신이다. 러시아(혹은 소비에트 연방) 사람이 아니다.)
이 선언으로 세상에 공산주의가 처음 생긴 것은 아니지만 공산주의의 결정판이 되었고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과 오스트리아 3월 혁명이 발생하며 공산주의는 급성장했고,
1917년 러시아에서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베이스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1917년 10월 혁명(~11.8), 볼셰비키 혁명이다. 과장 없이 세계사를 바꿔 놓은 사건 되시겠다.
이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첫 공식 노동자국가가 탄생했다.
성리학 이념으로 조선을 세웠듯이 공산주의 이념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때 블라디미르 레닌과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반볼셰비키 세력이 (10월 혁명 중에도) 들고 일어나 러시아 내전(1917.10.25~1922.10.25)이 발생한다.ㅡㅡ
이놈의 내전에 (또) 전 세계가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건,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단순요약해서 백군(만셰비키) vs. 적군(볼셰비키, 레닌)이 싸우는데 백군 쪽에 미국, 영국, 일본이 참전했다.
결과는 적군의 승리. 거대한 러시아 전역이 공산화 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결성되었다.
반면 전세계는 깜짝 놀랐고, 공산주의에 광적인 반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사에서 1920년대 독립운동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누어 공부하게 되는 배경이 바로 이것. 덕분에 우리는 암태도 소작쟁의, 원산 총파업, 신간회 등을 외우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공산주의 만큼이나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을 광기가 자라고 있었으니...
파시즘
제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에 거금을 들여가며 협상군에 막판 숟가락을 얹었으나 콩고물도 못 건진 나라가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고대 로마의 영광은 사라지고 300여 개로 쪼개졌던 이탈리아는 막 통일을 끝내고 몸이 근질근질 했다. 게다가 1차 대전의 콩고물도 못 얻어 먹고 찬밥 신세가 되자 틈새시장을 노린 무솔리니가 1919년 전투 파쇼를 창설했고, 이는 2년 뒤 국가 파시스트당으로 발전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 부활,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국가를 통제하고 장악하고, 국민을 감시하고,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죽여버리고) 독재를 강화해 나갔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 집적대고, 식민지였던 리비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비정상회담 111회 <식민 역사와 독립>편에 나온다.

그리고 이걸 또 야무지게 벤치마킹하는 미친 놈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히틀러다. 1933년 독일 총리, 34년 대통령과 총통, 이후 독재를 해먹으면서 히틀러 역시 민주주의나 인권은 국밥 말아먹고 국내 상황을 정리해 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에 공산주의 선언, 각종 혁명, 러시아 내전까지 겪은 세계는 현기증이 심하게 난 나머지 세계평화를 위해 깨작깨작 노오력을 하기 시작한다. 국제연맹을 만들고 군비축소계획을 세우고 전범국인 독일을 뚜까뚜까 패는 등등.. 그럭 저럭 10여 년 동안 불안한 평화가 유지된다.
미국에서는 이 시기가 바로 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재즈의 시대, 돈지랄의 시대이다.

하지만 호시절이 지나간 뒤 호환 마마 음란비디오보다 무섭다는 그것이 도래했으니...
세계 대공황
1929년 말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가가 급락하며 시작된 세계 대공황.
원인은 몰라도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 나라 IMF를 생각해보자. 아니, 당장 지금 코로나-19 시대를 생각해보자.
그토록 번화했던 명동 상권이 몰락하고 있다. 개인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피폐해지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이기심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각 나라는 이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사용했다. 미국은 뉴딜정책, 일본은 우리 나라 벗겨먹기(한국사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일제강점기 시대별 일본의 지배방식과 우리 나라의 저항 문제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이다.) 등등.
이 와중에 스페인은
국왕 알폰소 13세의 무능과 실정 ▶ 리베라 장군의 쿠데타 및 권력 장악(1923)
▶ 리베라 정권의 무능과 실정(feat.스페인 독감, 세계 대공황) ▶ 리베라 실각(1930)
▶ 국민 총선(1931) ▶ 공화파 승리&좌파정권 출범 ▶ 알포소 13세 퇴위&망명
▶ 공화국
이라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였다.
대충 정리하면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볼셰비키 혁명과 러시아 내전 승리로 확산된 공산주의,
1919년 부터 무솔리니, 1933년 부터 히틀러로 대표되는 파시스트,
1929년 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
이것들이 모조리 잡탕이 되어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가 1930년대였다.
이 화약고가 세계의 이목을 끌 정도로 거하게 터진 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은 단순히 공산주의 vs. 파시스트라고 보기에는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다. 그럼에도 '이념 갈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각 파에 소속된 집단의 스펙트럼을 보면 알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공화파 : 왕국을 부정하는 공화당체제 지지. 좌파, 자유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진보 계열
국민파 : 왕정 복고 지지. 우파, 파시스트, 카톨릭 및 바티칸, 보수 계열
참전(지원) 단체
공화파 : 까딸루냐 자치정부, 바스크 자치정부, 소련, 국제여단, 멕시코, 프랑스(제3공화국)
국민파 :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제2공화국), 카톨릭
공화파는 제대로 훈련된 군사는 거의 없었다. 오합지졸 인민군, 일부 민폐만 끼친 국제여단 등.
반면 국민파는 상당히 잘 훈련된 정예부대를 가지고 있었다. 핵심 전력은 모로코에 파병되었던 아프리카 군단.
스페인 최남단과 모로코(북아프리카) 최북단은 배로 불과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여기가 바로 지브롤터 해협이다.
(여행할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굳이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로 넘어갔다.ㅡㅡ)


공화파가 아프리카 군단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것만 저지했어도 내전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화파의 전력은 뒷골이 땡길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독일은 때마침 개발한 신무기(특히 전투정)의 성능을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신나게 참전했고...
각 파의 지원 단체 중 내게 흥미로운 단체는 까딸루냐 자치정부와 국제여단,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다.
국제여단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각국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등을 지향하는 문학, 예술계 인사가 제법 참전했다. 대표적으로
앙드레 말로 : 민폐만 끼치고 간 양아치
어니스트 헤밍웨이 : 종군기자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훗날 아바나에서 소설 씀
조지 오웰 : 전투에 직접 참가해 죽을 고비 넘기고 겨우 살아나 모두까기 시전
까딸루냐는 지금도 분리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9년 다시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하필 분리주의 운동이 과격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경찰들은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자들을 무력진압했고, 나는 눈 앞에서 에스빠냐 광장에 바리케이트 치는 것을 보았다.

까딸루냐 지역과 중앙 정부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스페인 내전 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포르투갈의 국민파 지원에는 슬픈 배경이 있었다. 그 당시 수상이 독재자 살라자르였다.ㅡㅡ
(유유상종, 끼리끼리, 초록은 동색)
살라자르의 독재와 레지스탕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로 빌레 아우구스트 감독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원작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일부 이 영화를 무슨 낭만적인 여행기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살라자르의 손녀는 자기 집안의 비밀을 알고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는데, 우리 나라 독재자나 친일파 후손에겐 그런 감정이 있을까 궁금하다)

이미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너덜너덜해진 영국과 프랑스 등은 중립을 핑계로 스페인 내전을 방관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파시스트도 미심쩍지만 공산주의는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으니 애매하긴 했을 듯. 더욱이 이들은 독일이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낙관을 전제로 정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방관의 대가로 전력을 끌어 올린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니 통수를 거하게 맞은 셈이랄까, 근거 없는 낙관의 해악이랄까. 뭐가 됐든 전세계는 야만과 광기로 개판이 되었다. 우리 나라도 일본의 정신 나간 수탈로 지금까지 상흔을 안고 있다.
내전의 결과 역시 야만과 광기였다. 권력을 잡은 독재자 프랑코는 수만에서 수십만 명을 학살했다.
우리 나라가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스페인 역시 지금까지 분열과 갈등과 상처를 안고 있다.
공화파의 패배로 공화파 편에 섰던 국제여단원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프랑스로 망명했다. 하지만 이후 전세계를 휩쓴 반공과 매카시즘으로 이들의 참전 경력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프랑코 정권에 잡힌 자들은 (자국민이 아니니) 대놓고 총살하지는 않았지만 옥사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격전지에 배정되어 대부분 전사당했다고 한다.
그나마 멕시코에서 망명자들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위에 적은 <판의 미로>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런 망명자의 자녀와 어울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자신의 영화에 스페인 내전 관련 이야기를 넣게 되었다고.
프랑코의 독재와 학살 때문에 이미지가 좀 낫긴 하지만, 공화파가 승리했다 한들 힘 없는 국민들에겐 뭐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뒷목 잡고 쓰러질) 스탈린과 김씨의 만행이나 공산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된 한반도의 이념 갈등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돌아보며 인간이란 원래 그런 거라는 회의감도 든다. 사람보다 이념이 먼저, 아니 이념보다 일신의 안위와 권력이 먼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차라리 공산주의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다가도.... 아 이 망할 인류는 신교와 구교로도 나눠서 싸웠지...ㅡㅡ 공산주의가 아니라도 분열하고 싸웠을 거란 생각이 들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도대체 이 포스팅을 몇 시간이나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허리가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ㅡㅡ
원래 이 포스팅을 끝내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독후감을 쓰려 했는데 허리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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