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시험날 가채점 결과를 보며 망연자실했을 때.
고국원왕의 죽음으로 위기에 빠진 고구려를 재정비하고 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소수림왕 이야기를 생각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너무 좌절 마시라!!!
너무 뻔하고 교육적인 내용이라 '제 인생은 교과서처럼 안 되던데여ㅡㅡ'라며 삐딱선을 타 보았지만....
내 인생이잖아?
마음 고쳐먹고, 다음 번 시험은 잘 준비해서!!! 드라마틱하게 1급 따서!!!!! 당당하게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 구입하고 인증샷을 남기리라!!!!! 라고 마음 먹었다.
중간에 나사가 빠지는 바람에 '1급은 됐고 70점 받고 2급 따지 뭐, 헿헿헿' 상태가 되긴 했지만.
가채점 결과 제 51회 한국사능력검정 1급이 나왔기 때문에, 랜선약속 대로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의 쓸모」를 바로 구매했다.
제 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합격 후기(+국사편찬위원회 안 돌리고 그냥 까기)
최태성 선생님이 강의 중 소개하신 대로, 역사라는 것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역사를 인물 위주, 이야기 위주로 배우는 것은 재미 있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는 매우 좋지만... 그만큼 위험요소가 있게 마련.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나 인물에 경도되거나 흥미 위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함 없이, 그러면서도 매우 잘 읽히게 쓰여졌다. 선생님의 지향점도 그렇겠지만... 치우침 없이 글을 쓰기 위해 한 자 한 자 얼마나 고심하셨을지 알 수 있다.
글에 '나 힘들어썽ㅠ'이라는 구절이 전혀 없는데도 알겠는 건....
이영회 선생님, 다산 정약용, 김육, 장수왕, 장보고, 정도전, 나혜석, 박상진... 이름 없는 아무개들의 본받아야 할 시대정신과 역사의식,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와 고구려의 연개소문,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단추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그 분 등, 또한 우리가 반면교사 삼아 마땅한 인물들의 관성과 욕심,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 역사의 결정적 순간 등 다채로운 소재를 통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의 진단과 해답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이 책의 쓰여진 목적이다.
시험(3년 터울의 사료를 발행 순서대로 나열하라는 따위의 지엽적인 문제에 함몰되어야 하는) 준비를 위한 공부나 연도를 줄줄 외우는 공부는 성격에 안 맞아서 못 해먹지만...
이야기를 좋아하고, 옛날 이야기 읽듯 역사를 읽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지도 보는 것도 좋아해서 문명이 발달하기 전 인류가 자연 조건(산맥과 강 등)으로 지역이 나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문화를 발전시켜 나간 과정 자체가 재밌었다.
재미로, 이야기로 역사를 좋아하고 책을 읽었기 때문에 성적은 별로였지만(수능 세계사 만점은 운이 좋았던 걸로ㅡㅡ)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역사의 쓸모'가 체득되었던 것 같다.
역사란,
미우라 아야코의 「(속)빙점」에 인용된 것처럼 '고개를 뒤로 돌린 예언자'이기도 하고,
조르주 상드의 「빅토르듀 저택」의 노박사의 말처럼 '인류가 저질러 온 어리석고 잔인한 이야기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잔인하고 슬픈 우리 나라의 현대사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져서 오랫 동안 고생하기도 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 책을 읽고 그렇게 역사를 공부했을 것 같다.
역사가 내게 준 선물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전공이나 취업, 자격증에 도움도 안 되는 낡은 이야기에 왜 그렇게 시간을 쓰는지,
머리 복잡하게 시험 다 끝났는데 왜 또 역사 관련 책을 읽는지 한심해하는 시선을 받았을 때는 진짜 내가 현실감각 없는 인간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내가 가진 단단한 내면과,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도 반드시 길을 찾아낼 거라는 자신을 향한 무한한 신뢰의 기저에는 역사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파리에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무르만스크의 한인 노동자 이야기를 모른 채 그 도시를 걸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단한 역사의식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역사 이야기, 소중한 보물을 놓쳐버린 기분.
한참 해외로 여행 다니던 시절에 너무 아파서(전신마취+개복수술을 앞두고 주사와 약으로 버티던 상태라) 거기까지 공부할 여력이 없긴 했지만... 강제 여행금지 당한 이시국이 아쉽지만, 더 풍성한 여행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으며 위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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