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부터 시작해 사흘에 걸친 나름 대장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어쩌다보니 청소의 마무리는 중고거래가 되었는데...
어제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을 33권 팔았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할 만한 물건은 다 기부했다.
오늘은 알라딘 중고매장에 드라마 미생 블루레이를 올렸는데 올린지 2분 만에 판매되어버리는 기록을 세웠다.
알라딘에서는 매입불가라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판매자 등록을 해서 올린 건데... SNS에 무료로 나눈다고 할 때도 없던 연락이.ㅡㅡ
당근마켓에 가입해 몇 가지를 올렸는데, 가격을 낮췄기 때문인지 이번엔 올린지 1분도 안 되어 동시에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문득... 처분이 1순위이긴 했지만 내가 가격을 너무 낮췄나... 장사에 소질이 없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어쨌든 5개를 올려서 4개가 10분 안에 모두 거래되긴 했다. 취소될 수도 있긴 한데 또 금방 나갈 것 같긴 하다.
거래의 세상은 알라딘 중고매장과 SNS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덕후들도 내가 아는 세상에만 서식하는 게 아니었다.
며칠 동안 요란하게 청소를 하고 난 뒤 깨달은 것 몇 가지.
1. 덕질을 할 때 하나만 사면 될 걸 상술에 말려들어 서너 개씩 사는 걸 최애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짓이야말로 최애에게 가장 해로운 짓이었다. 최애에게 미안하고, 제품을 제작한 이들에게 미안하... 설탕놈들에겐 안 미안하다. 어쨌든, 가장 미안한 건 나 자신이다. 내 종잣돈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2. 진정, 지난 날 나의 어리석음과 과욕으로 공간을 소모하고 있던 물건들에 미안해졌다. 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 내 과욕만 아니었다면 정말 이 물건을 꼭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가서 요긴하게 쓰일 것들이기에. 나는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을 대할 때도 무책임했다.
3. 정리 정돈이란 단순노동이 아니다. 과욕이나 어리석음일지라도 나의 일부(내 노동의 대가로 번 돈, 내 시간과 고민 등)를 쏟아 부은 물건들을 하나씩 대면하는 과정. 내 영혼을 아주 작게 쪼개어 물건들 속에 깃들인 것, 일종의 호크룩스들을 상대하는 거다. 그래서 힘들게 일할 때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다. 대단한 정신적 감정적 노동이다. 왜 정리정돈이 내면을 정화하는 작업인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4. 물건을 정리할 때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팔 건 팔고 버릴 건 확실히 버려야 한다. 오늘이 아파트 분리수거 날이라 최애 관련 물건을 거의 다 버렸다. 앨범은 분리수거를 포기하고 100L짜리 종량제봉투를 사서 통째로 넣어버렸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나를 위한 최선이었다. 탈덕한 것도 아니라 더 그랬다.
처음에는 나 말고 늦게 입덕해서 내가 버릴 물건 하나가 아쉬울 늦덕에게 전달해줄까 했다. 그게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시간과 집중력을 잡아먹는 일이었고,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리며 애초에 내가 왜 정리를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버리기로 한 거다. 이 청소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기에. 다른 덕후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남 좋은 일을 시키는 것 뿐이므로.
손에 쥐었을 때 차마 놓을 수 없는 몇 개는 그래도 남겨두었다. 여전히 내게 설렘을 주는 건 의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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