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청소를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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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청소를 마치다

by 이정리 2020. 8. 20.

화요일부터 시작해 사흘에 걸친 나름 대장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어쩌다보니 청소의 마무리는 중고거래가 되었는데...

어제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을 33권 팔았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할 만한 물건은 다 기부했다.

오늘은 알라딘 중고매장에 드라마 미생 블루레이를 올렸는데 올린지 2분 만에 판매되어버리는 기록을 세웠다.

알라딘에서는 매입불가라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판매자 등록을 해서 올린 건데... SNS에 무료로 나눈다고 할 때도 없던 연락이.ㅡㅡ

 

당근마켓에 가입해 몇 가지를 올렸는데, 가격을 낮췄기 때문인지 이번엔 올린지 1분도 안 되어 동시에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문득... 처분이 1순위이긴 했지만 내가 가격을 너무 낮췄나... 장사에 소질이 없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어쨌든 5개를 올려서 4개가 10분 안에 모두 거래되긴 했다. 취소될 수도 있긴 한데 또 금방 나갈 것 같긴 하다.

 

거래의 세상은 알라딘 중고매장과 SNS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덕후들도 내가 아는 세상에만 서식하는 게 아니었다.

 

며칠 동안 요란하게 청소를 하고 난 뒤 깨달은 것 몇 가지.

 

1. 덕질을 할 때 하나만 사면 될 걸 상술에 말려들어 서너 개씩 사는 걸 최애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짓이야말로 최애에게 가장 해로운 짓이었다. 최애에게 미안하고, 제품을 제작한 이들에게 미안하... 설탕놈들에겐 안 미안하다. 어쨌든, 가장 미안한 건 나 자신이다. 내 종잣돈을 갉아먹는 짓이었다.

 

2. 진정, 지난 날 나의 어리석음과 과욕으로 공간을 소모하고 있던 물건들에 미안해졌다. 절로 무릎을 꿇게 된다. 내 과욕만 아니었다면 정말 이 물건을 꼭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가서 요긴하게 쓰일 것들이기에. 나는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을 대할 때도 무책임했다.

 

3. 정리 정돈이란 단순노동이 아니다. 과욕이나 어리석음일지라도 나의 일부(내 노동의 대가로 번 돈, 내 시간과 고민 등)를 쏟아 부은 물건들을 하나씩 대면하는 과정. 내 영혼을 아주 작게 쪼개어 물건들 속에 깃들인 것, 일종의 호크룩스들을 상대하는 거다. 그래서 힘들게 일할 때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다. 대단한 정신적 감정적 노동이다. 왜 정리정돈이 내면을 정화하는 작업인지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4. 물건을 정리할 때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팔 건 팔고 버릴 건 확실히 버려야 한다. 오늘이 아파트 분리수거 날이라 최애 관련 물건을 거의 다 버렸다. 앨범은 분리수거를 포기하고 100L짜리 종량제봉투를 사서 통째로 넣어버렸다.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나를 위한 최선이었다. 탈덕한 것도 아니라 더 그랬다.

처음에는 나 말고 늦게 입덕해서 내가 버릴 물건 하나가 아쉬울 늦덕에게 전달해줄까 했다. 그게 여러 모로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시간과 집중력을 잡아먹는 일이었고,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리며 애초에 내가 왜 정리를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냥 버리기로 한 거다. 이 청소는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기에. 다른 덕후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남 좋은 일을 시키는 것 뿐이므로.

손에 쥐었을 때 차마 놓을 수 없는 몇 개는 그래도 남겨두었다. 여전히 내게 설렘을 주는 건 의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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