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알못 경제알못으로 산지 nn년.
귀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내 인생에 유일하게 귀염쁘띠뽀작큐트한 건 월급.
스스로를 물욕 없는 아나키스트라 여기며 세후 200만 원 정도 되는 월급을 이리 저리 쪼개 소소한 취미생활을 하고 돈 모아 여행 다니는 걸로 족하다 믿었다.
어차피 큰 돈을 모아본 적도 없고 구경해 본 적도 없었기에. 내 인생에 억 단위 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가끔 재테크 얘기를 들어도 내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다들 그러잖아. 아, 재테크 해야 하긴 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고 어렵고.. 그런 거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난 아니야.
그런 안일한 삶에 폭탄이 떨어졌다.
집을 나와 버린 것.
일단 짐을 싸 들고 혈육의 집에 무전취식하며 독립이란 걸 해 보겠다는 생각이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처음부터 독립을 하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두렵기도 하니까 한 달 정도 혼자 살며 머리를 식혀보자.
그래서 한 달 정도 단기 계약을 할 수 있는 주거지로 쉐어하우스 를 알아보았다.
결과는 풰일.
집 구하기 1, 쉐어하우스 실패기
혈육의 집에 머무는 건 일시적인 것이었고 본격적인 살 집 알아보기가 시작되었다.뭐든 문제는 항상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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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병스낵과 천하장사 소시지를 돼겁지겁 흡입하며 심기일전.
한 달 단기 임대 따위의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월세 를 알아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옥탑방 을 발견하고 가계약을 걸려 했으나... 또 풰일.
집 구하기 2, 옥탑방 월세 구하기 (반) 실패기
그래... 한 번에 성공하면 내가 아니지.조상님 묫자리를 잘못 썼거나 사주에 마가 꼈거나 전생에 나라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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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옥탑방사건은 내게 결정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성이 돌아온 뒤 생각해보니, 보증금 포함 월세 55만 원은 내게 너무나 큰 돈이었다.
보통 월세는 월급의 10%~15%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래야 월세에 허덕이며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 월급은 세후 201만 원 안팎. 그러면 나의 적정 월급은 보증금 포함 20만 원~30만 원.
서울에서 월세 30만 원으로 갈 수 있는 집은 정말 사람이 살 만한 집이 아니다.
조건이 맞아 월세 세액공제 혜택을 12%까지 받을 수 있긴 하다.
그것까지 계산해도 월세 35만 원이 내 분수에 맞는 집이다. 관리비는 별도로 치고.
보증금을 2,000만 원까지 올린대도 괜찮은 집의 월세는 그렇게 낮아지지 않는다.
어떻게든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보기 위해 매일 직방 앱을 들여다보고 찾아보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산 걸까.
왜 이 나이가 되도록 돈에 대해 모르고 살았을까.
이제 와서 돈을 어디서 더 벌 수 있을까.
별별 생각과 후회와 자책에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살도 조금 빠졌다.ㅡㅡ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맘고생 다이어트더라.
여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1. 독립을 포기한다. 가장 편하고, 현실적인 방법.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2. 보증금 최대 2,0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짜리 물건을 찾아 들어간다. 역시 현실적인 방법. 하지만 집의 상태는 내 트라우마를 건들지도 모른다.
3. 보증금 최대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물건을 찾아 들어간다. 가장 현실적으로 비현실적인 방법. 월세 내느라 허덕이다 삶의 질이 수직낙하할 거라는 현자들의 조언. 이미 목돈 마련이 남들보다 늦었는데 이 선택지는 목돈마련에서 안드로메다 급으로 멀어지는 길.
4. 수입을 월 500만 원으로 늘린다. 가장 비현실적으로 현실적인 방법. 도대체 어떻게?????
이 네 가지 길이 100세 시대, 남은 내 인생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4번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단 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짐 싸들고 70일 동안 여행을 떠나버렸던 것처럼.
현재의 나는 월세 35만 원 짜리 집도 과분한 처지라는 것을 현실로 마주했을 때의 충격.
지금의 나로 살아온 이유는 충분하고, 나는 과거의 나를 탓하지 않는다.
비록 돈은 없고 경제관념도 없지만, 이제라도 각성하고 시작하려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바로 과거의 나이므로.
나는 돈을 모으고 경제 감각을 키울 에너지로 건강한 마음을 얻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므로.
이것이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이 늦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나를 아주 확실하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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